명성황후는 계명아트센터에서 12월 6일부터 29일까지 공연한다. 11월말에 지난 금요일 13일에 예약을 해두었었다. 1,2부로 나뉘어 150분 공연한다. 하지만..공연날에는 공연장 내부가 너무 따뜻했고..이번이 두번째 관람이다보니 피곤함이 몰려와 1부에서는 조금 졸았다.
시민회관에서 관람할 때 보다는 의상과 무대가 화려해지고 세련(?)된거 같다. 그래서 명성황후는 몇번씩 본다는 사람이 있는가보다
명성황후는 조선조 26대 왕인 고종의 왕비이며 대한제국의 첫 황후이기도 하다. 경기도 여주에서 민씨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8살때 아버지를 여위었다.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올라와 친척인 대원의 부대부인 민씨의 도움으로 시아버지 대원군의 마음에 들어 1866년 16세의 나이로 왕비가 되었다
정치적으로 쇄국정치를 펼치는 대원군과 개화책을 펼치려는 고종과(왕비와)는 정치적으로 적대관계에 있던 대원군과는 사사건건 대립하게 된다
힘업는 고종과 정치적으로 맞지 않았던 일본군은 여우사냥이라는 암호명으로 왜세에 저항하는 왕비를 암살한다. 1897년 10월 8일의 새벽에 벌어진 일본의 치밀한 작전에 의해 일국의 황후가 궁에서 시해된 사건은 그당시 힘없는 조선의 통한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명성황후는 시해된 직후 대원군에 의해 폐위되고 서인으로 강등했다가 같은 해 고종에 의해 복호되었고, 고종이 황제로 즉의하면서 황후로 추봉되어졌다
죽은지 2년만인 1897년에야 명성황후의 장례는 국장으로 엄숙히 치러져 현재 홍릉에 안치되어 있다
명성황후가 왕비가 된 것은 친척이 없어 외가의 힘이 없을 것이라는 대원군의 의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대원군도 사리사욕보다는 조선을 위하는 마음이었다고 생각되지만 국가를 위한다는 것이 시간이 지난 다음에 어떻게 평가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몸은 죽어 원귀가 되었지만 임금과 나라를 위하는 마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조선이여 무궁하라는 마지막 장면은 웅장하다못해 비장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 러시아가 넘보는 우리나라는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없는, 주변나라의 속국(?)으로 참으로 힘없고 작은 나라였다는 것을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