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남시에 위치한 대명호는 샘물이 모여 천연호수가 만들어진 호수로 제남시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사서 기록에 의하면 제남에는 72개의 샘물이 있어 "제남의 샘물 이 세상에 제일'이라는 미명을 가지게 되었다. 20세기에 이르러 과학자들의 고찰에 의하면 제남의 샘물수는 108개에 달해 사서의 기록이 겸허함을 보여준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백개의 샘물이 모여 지세가 낮은 대명호에 흘러드는데 샘물의 생성원인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야사에 의한 것인데, 과거 대명호에는 대명사(大名寺)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 해 대명사의 스님들이 색계를 범해 하늘이 노해 그들을 응징하고저 대명사를 땅속에 가라앉히고 그 위에 호수를 만들었다고 한다.
또 한 가지 해석은 과학적인 논증에 의한 것인데, 제남남쪽의 산은 두터운 석회암으로 구성되었고 북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한다. 석회암사이에 크고 작은 동굴이 많아 지하수가 암석틈으로 흘러 북쪽으로 가던 중 제남시에 이르러 물이 경유하지 못하게 단단한 용암층을 만나 할수 없이 방향을 바꾸어 땅을 뚫고 지상으로 솟아오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은 호텔 샤워물이 거의 샘물수준이다. 첫날은 비누칠해서 두번 씻을 필요도 없이 뻑뻑했다. 제남시는 친구 재남이시가 여기라고 장난도 하면서...물이 맑고 좋았다. 거주민들은 물을 그대로 통에 받아서 식수로 쓴다고 하였다.
길자와 함께...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들은 눈을 감은 경우가 많다
태항산에서의 이틀간의 날씨는 화창하였고. 제남시부터는 날씨가 흐리고 기온이 내려가 추웠다. 기름기로 인해 내 위장은 뒤집어져 있어 중국음식점 네온간판만 봐도 영 아니었다.
가이드가 설명하는 청도.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이 곳에 1891년 청 정부는 군사를 파견하여 청도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897년 11월에 독일에 의해 점령당했고, 1914년 11월 독일에 이어 일본에게 점령당했다. 1922년 12월에 회복되었지만, 1938년 1월에 일본에 의해 또다시 점령당했다. 1945년 8월 항거 전투에서의 승리 이후에 국민당 정부에 의해 회복되었으나, 곧 미국의 해군 기지가 되었다. 시내 곳곳에서 독일식, 스페인식, 일본식 등으로 지어진 건축물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는 청도의 과거 식민지 역사를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이후, 특히 근 20년 이래로 청도는 놀라운 변화를 이룩하여 대외 무역 항구, 해양 과학 연구 도시, 관광 도시 등의 특성화된 도시로 성장하였다.
마지막 날. 궁금했던 청도. 칭다오. 중국의 작은 유럽. 독일이 점거했던 도시라 유럽형이었다. 거리에는 당시의 건물이 남아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경치가 아름다워 휴양지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오사광장은 비가 뿌리고 추워져서 많이 둘러보지는 못하고 기념사진만 ...
소어산 전망대에 올라서니 청도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날씨와 여행 마지막날이라는 피로감으로 그냥 둘러보기만 하였다.
순자와 함께. 학교 다닐 땐 참 친했는데..세월이 각자의 길을 걷도록 했었나..순자연애편지도 써주고..순자는 내 글씨를 좋아하여 따라 하기도 하고..그랬었는데..영희야 같이....그래...
청도 쉐라톤 호텔. 여기는 5성급호텔이어서 난방이 되었고 시설도 깨끗했고 샤워물도 정수가 되었는지 부드러웠다. 호텔방내부. 화장실도 깨끗하여 좋았다. 나는 전날부터 속이 탈이나 아침조식은 호텔뷔페로 다양한 요리가 많았지만 흰죽에 다꾸앙을 먹었다.
옆에 있는 단짝이었던 은희. 처녀시절에 은희는 대구국세청에 다니고 나는 코오롱에 다니고...그러다가 은희는 5년을 국세청에 근무하다가 김천으로 시집을 갔다. 7~8년전즘하여 대구로 이사를 왔고 그녀의 아들내외는 의사로 대학병원에 있다. 언제나 차분하고 조신한 멋진 내친구. 4박5일간 호텔방에서 버스에서 내내 붙어 다녔다.
카카오톡으로 단체채팅으로 보내오는 사진들..벌써 또 떠나자는 의견이 분분하다.
청도맥주가 유명하다는데 시간이 없어 맥주는 못 먹었음. 이렇게 여고동창의 중국여행을 마쳤다.